춘자(@SWERVINSEA)님 글 커미션

그들의 불온한 인연은 폭력으로 구속되어 있다. 녹색 악의를 치장처럼 두른 채 관계의 우위를 독점하는 이. 타의 유약을 정복하고 탐미하는 불쾌의 형상. 기민한 안목으로 비일상의 잔재를 움켜잡는 자. 제이드는 유우의 윤곽을 오랫동안 더듬어왔다. 매일 아침 표백된 기억과 휘발된 활자를 부여잡고 골몰하던 순간에도, 패배를 납득하지 못해 눈먼 광인처럼 그에게 매몰되었던 나날에도……. 하나의 유실로 말미암아 끝내 완성하지 못한 채 방치된 빛바랜 미제의 초상. 결국 그 누구도 불식할 수 없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은 가학적인 시인是認이었다. 가느다란 손 위에 놓인 오딘의 금빛 신뢰. 또는, 영원토록 유우의 존재를 탐구하겠다는 맹목적인 선언. 속절없는 죄악과 불순한 모략이 만연한 화폭의 위를 거니는 두 사람. 집념이 도륙해낸 폭력의 눈동자는 기어코 유우라는 미학의 심지⼼志를 꿰뚫고 자리한다. 비이성과 집착으로 점철된 색채의 향연. 서로를 할퀴고 파먹으며 그려내는 모순의 실재.

몽치(@mongchi_cmcm)님 타로 커미션

첫 키스는 레몬 사탕 맛이 난다며, 정말로?

첫 키스의 원인과 상황 전개

키스해 볼까요? 갑작스러운 제이드 리치의 제안이 첫 키스의 시발점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물론 '아무'에는 제안한 제이드 리치 본인도 포함되어 있었구요. 제이드 리치는 그간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유우가 이상한 소리 말라며 단호하게 거절하리라 생각했습니다. 도망치려는 유우를 가차 없이 얽어매고, 어떻게 탈출하는지 관찰하는 게 제이드 리치의 낙이었는걸요. 키스의 권유도 일종의 그 미끼에 가까웠습니다. 인간의 폐의 한계를 시험해 보고 싶습니다. 저희는 연인에 준하는 관계이니, 이상해할 것도 없지 않나요. 어쩐지 육십 도쯤 비틀려 있는 주장. 제이드 리치는 유우가 읽던 악보를 덮고 낮게 한숨을 내쉬는 것을, 하나만 남은 눈에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그러나 제이드 리치는, 유우가 자신에게 너무나도 익숙해져 버렸다는 사실을 간과했습니다. 유우는 악보로부터 시선을 돌려, 올리브 빛 눈을 마주하곤, 그러죠. 하고 승낙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거절해 봤자, 제이드는 더 기분 나쁜 반응을 해 올 게 분명합니다. 제이드 또래의 남자아이와 입을 맞추는 건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유우에게는 여러모로 새삼스럽지 않습니다. '이' 제이드 리치에게는 첫 키스일지도 모르겠지만, 제이드 리치라는 위인이 자신과의 입맞춤을 중요하게 생각할 것 같으냐고 묻는다면…. 글쎄요. 긍정적인 답이 떠오르지 않았기에, 유우는 자기 어깨를 감싸 쥐는 제이드 리치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첫 키스와 제이드 리치의 감상

제이드 리치의 매끈한 입술이 유우의 퍼석한 입을 머금습니다. 유우는 능숙하게 눈을 감고, 제이드 리치가 자기 윗입술과 앞니, 치열을 미끈한 혀로 훑는 것을 허용합니다. 제이드 리치의 키스는 간결하고 단정했지만, 정작 그 머릿속은 불어 터진 미트볼 스파게티처럼 어지럽기 그지없습니다. 유우가 왜 자신의 키스를 받아들인 것인지, 왜 이렇게 능숙한지, 왜…. 나는 이렇게 동요하고 있는데, 정작 유우는 깊은 바닷속처럼 차분하기 그지없는지. 지금까지 유우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갈증에 바닷물을 끼얹는 것처럼, 점점 유우의 입을 깊숙이 침범할 때마다 제이드 리치는 부족함을 느낍니다.

첫 키스와 유우의 감상

유우는 첫 키스를 도통 기억해 낼 수 없습니다. 몇 년, 혹은 몇십 년 동안 쌓인 패총의 그 아래에 있을 법하다고, 본인도 짐작만 할 뿐입니다. 그러니 제이드의 상기된 뺨이 자신의 시야에 가득 들어차도, 그것을 보지 않으려 눈을 감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입 안을 가득 채워오는 미끈한 혀는 너무나도 생생해서, 도무지 눈을 감는 것만으로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유우는 스스로가 제이드와의 키스에 설레고 있다는 사실을 또 깨달아버리고 맙니다. 마치 저주에 걸린 것처럼, 형광등의 스위치를 켜는 것처럼 얇은 피부가 닿는 순간부터 심장이 울리기 시작합니다. 여러모로 최악의 첫 키스, 최악의 진행. 그중에서도 가장 최악인 것은, 그 제이드 리치의 올리브 빛 눈에 자신의 상기된 얼굴이 가득 들어찬다는 사실입니다.

들켜버렸다! 마주친 사람의 반응

그러던 중, 무언가 우당탕 무너지는 소리, 제이드 리치의 시야에서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유우는 눈을 왼편으로 데굴 굴려 그 원인을 확인합니다. 입을 떼면 될 것을, 무엇 하러 이제까지 입술을 물고 늘어지는지 모르겠어요. 유우는 옥타비넬 일 학년생 두어 명이 비품 박스를 들고 모스트로 라운지를 들어오다가, 둘의 키스 장면을 발견하곤 그만 박스를 떨군 장면을 목격합니다. 다행히 옥타비넬이었으니 망정이지, 다른 기숙사였다면 지금 키스고 뭐고, 바로 제이드더러 떨어지라고 어깨를 밀쳤을 것이 분명합니다. 유우의 앞에 서 있는 이가 누군지 알아챈 옥타비넬 신입생들은, 알아서 빠르게 퇴장합니다. 그 모습이 마치 갯강구 같다고 생각하고 말아요. 제이드가 이 사실을 안다면 옥타비넬 생이 다 되었다고 비릿하게 미소 지을 테니, 입 밖으로 내지 않는 게 상책입니다.

이걸 어째? 제이드 리치의 반응

제이드 리치는 꼭 일 분을 더 입 맞춘 후, 소란의 원인을 확인합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즐이 자잘한 비품의 재고를 보충하겠다 말했던 것도 같습니다. 이런, 아즐에게 야단맞겠군요. 키스하기 전과 다름없는 박자로 호흡하며 제이드 리치는 미소 짓습니다. 수영을 즐겨 했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었는지, 유우 또한 숨이 가쁜 행색이 아닙니다. 지금 제이드 리치에게 있어서 키스를 들켰다는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태연자약한 유우의 태도가 아주 마음에 걸립니다. 유우 씨. 어째서 그렇게 태연하죠? 어딘가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건가요? 나에게 무얼 숨기고 있죠? 묻고 싶은 것이 한 바가지이지만, 제이드 리치는 눈앞의 케이크를 당장 먹어 치우는 성격이 아니었으므로. 일 학년들이 떨군 상자를 마저 옮기기 시작합니다.

이걸 어째? 유우의 반응

유우는 참으로 태연자약합니다. 그야 자신이 손을 쓰지 않아도 제이드가 알아서 입막음할 테고, 만약 그렇지 않아 추문이라도 나돈다면…. 그것도 잠깐일 테니까요. 이 시기의 남자 고등학생들이란 참으로 단순해서, 다른 사건이 터지면 그곳으로 시야가 손쉽게 돌아갑니다. 그리고 유우의 기억이 명확하다면, 곧 문화제의 시기가 다가옵니다. 낡은 기숙사의 마법도 쓰지 못 하는 감독생의 소문 따위 손쉽게 묻힐 겁니다. 그러니 괜찮습니다.
괜찮아야 합니다.

첫 키스, 그 이후 둘의 관계

덤덤하고도 간결했던 첫 키스는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레몬 맛도, 그렇다고 바닷소금의 맛도 나지 않았던 첫 키스였지만 둘의 관계 변화에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제이드 리치는 이후, 자신이 유우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렇다면 알아내는 것이 제이드 리치에게 있어서 인지상정. 바다의 가장 깊은 곳과, 육지의 가장 높은 곳을 차례로 정복했으니, 이제는 사랑하는 이의 심연을 캐낼 때입니다. 제이드 리치는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해도 그 끝을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제이드 리치의 후기

제이드 리치는 유우의 키스가 의외로 서툴렀다는 사실을 떠올립니다. 표정이나 키스를 받아들이는 자세만 볼 때는 전혀 첫 키스를 맞는 사람이 아닌데 말이에요. 이 사실을 유우에게 알려 주었다가, 얼굴이 홍합 속살 마냥 붉어진 유우가 잔뜩 성을 내는 바람에 제이드 리치는 한동안 유우의 기분을 맞추어 주어야 했습니다. 하마터면 나머지 눈도 찔릴 뻔했어요. 만약 기회가 된다면,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는 곳에서 한 번 더 키스하고 싶다고 합니다.

유우의 후기

유우는 의미 있는 후기를 남기지 못했습니다. 그야 이 키스는 유우에게 있어서 첫 키스가 아니니까요. 아주 잠시, 제이드 리치도 첫 키스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또한 했습니다. 그야 그렇게 능숙했는걸요. 제이드의 미끈거리는 혀가 치열을, 입천장을, 연구개와 물컹거리는 입 속살에 사정없이 들이치던 감각을 떠올리면 지금도 어깨가 파르르 떨립니다. 일 학년들이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당황하는 바람에 호흡이 흐트러질 뻔했어요. 그렇다면 제이드는 유우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고 기고만장해졌을 게 분명합니다. 그것만큼은 보기 싫다고 하네요. 추후 그 일 학년들에게 보답이라도 해 주어야겠다고. 유우는 남몰래 생각합니다.

추가질문

Q. 이후 이 사건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A. 제이드의 발빠른 작업 덕에 이야기는 크게 퍼지지 않았으며, 소문을 주워들은 이들도 곧 유우의 예상대로 다른 곳에 정신이 쏠렸다고 해요. 제이드는 유우에게 '자신이 손 쓸 수 있는 곳은 한계가 있다.' 며 약간의 불안을 부추겼지만, 유우는 제이드가 헛짚을 리 없다는 점을 알기에, 자신에게 무엇을 바라는 지 알기에 가볍게 무시했습니다. 이후 상황은 정말 유우가 예측한 대로 흘러갔고요. 본의 아니게 제이드가 유우의 배후 -비밀- 을 확신하게 되는 계기로 발발했네요.

Q. 이후에 리벤지를 하나요?
A. 안타깝게도(?) 유우가 거절했기에, 두 번째 키스는 당분간 이루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야 당연하죠. 별다른 핑계도 없이 키스하자고 다가오는 제이드 리치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솥단지만큼이나 불안하고 불길하니까요. 정말 제 혀를 잘라다 목소리를 빼앗을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과장을 섞었지만 그만큼 제이드를 불신하기에- 생각에, 제이드와의 거리를 철저히 지켰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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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너는 나의 꿈을 방문했다.

꿈의 주인 제이드×꿈의 방문자 유우

오늘의 제이드는 완전히 저기압입니다. 구름이 잔뜩 껴 햇빛 하나 들이칠 구멍조차 없었던 하늘처럼, 목구멍이며 가슴께가 꽉 막힌 것 같이 갑갑해요. 뚜껑 닫힌 테라리움 안에서 빙글빙글 맴돌고 있는 기분이 불유쾌합니다. 그 원인을 꼽으라면, 얼마 전 유우와 있었던 다툼 때문입니다. 원인은 사소했다지만 홧김에 유우가 내지른 말이 제이드의 심장에 푹 꽂혔어요. ‘예전부터 너는 그런 식이었어.’ 모르는 이가 듣는다면 어느 아침 드라마의 대사 같겠지만, 제이드는 얼음 마법이라도 맞은 듯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어요. 분이 식지 않았는지 계약을 파기하겠다고 옥빛 리본을 내던지고 간 유우의 행동 때문일까요. 아니면 언젠가부터 유우가 자신이 아닌, 또 다른 ‘제이드 리치’를 자신에게서 비쳐 보고 있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일까요…. 제이드는 잔뜩 발을 구르며 모스트로 라운지를 나가는 유우를 배웅조차 해 줄 수 없었습니다. 첫 번째는 설마하니 유우의 입에서 먼저 계약 파기의 제안이 나올 줄 꿈에도 몰랐음이고, 두 번째는 의미심장한 유우의 말 때문이겠죠. 예전이라니. 제이드와 유우는 만난 지 반년밖에 되지 않았는걸요.

언젠가 유우가 자신에게 했던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그 노란 눈을 보고 있으면 자신이 사정없이 헤집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어 소름 끼친다고 말했었죠. 제이드는 차마 그 자리에서 ‘나 또한 그렇다.’ 라고 답할 수 없었어요. 심해의 바닷물을 퍼다 부은 것처럼 새까만 유우의 눈을 볼 때마다, 제이드는 얼음장 같은 물에 들어간 듯한 기분을 받곤 했으니까요. 그것에 이끌려 유우를 자신의 손안에 틀어쥐었다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이 관계의 우위는 제이드의 것이 아니었어요. 유우에게 묻고픈 것이 많습니다. 당신은 나에게서 무얼 보고 있는 것인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날 서린 유우의 목소리를 곱씹으며, 제이드는 힘겹게 잠에 듭니다.
 
정작 유우는 바쁜 하루를 보내느라 제이드와 싸웠던 일을 새까맣게 잊고 있었어요. 유우에게 있어서 제이드와의 싸움은 처음이 아니니까요. 유우가 기억하는 것만 꼽으래도 두 손을 훌쩍 넘어갈 겁니다. 유우는 하루 종일 그림의 숙제를 돕고, 선생님의 심부름을 하고, 몇 번째 반복되는지 모를 숙제와 과제를 하고…. 완전히 녹초가 된 몸을 겨우 이끌어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요. 하필 날이 좋지 않은 탓에 자꾸만 나쁜 기억이 머릿속을 맴돕니다. 빨래도 해야 하고, 이것저것 할 게 많은데…. 지금 이렇게 열심히 하루하루를 보내도, 결국 그 날이 오면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해버릴 텐데. 햇빛 한 점 받지 못한 탓인지, 유우의 미간은 자꾸만 찌푸려져요. 잠들기 전, 머리에 묶인 리본을 풀려고 손을 올렸다가 허공만 매만진 탓에 불유쾌함은 더욱 깊어집니다. 이럴 땐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쯤, 오랜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어요. 유우는 힘겹게 눈을 감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것입니다…. 늘 그랬듯이.

그렇게 유우는 제이드의 꿈을 방문하게 됩니다.

유우는 깊고 깊은 바닷속에서 눈을 뜹니다. 수중이라기에는 멀쩡히 숨도 잘 쉬어지고, 시야도 또렷합니다. 하지만 유우는 익숙한 부유감에, 이곳이 지상만큼은 아님을 확신해요. 긴 머리카락이 너울대며 공중으로 떠오르고, 입고 있는 치마가 물결에 따라 흐늘거립니다. 발치에는 고운 모래가 쌓여 있어, 아무리 걸음을 조심스럽게 옮겨도 뿌연 먼지가 물살에 업혀 일어나요. 발밑이 미세하게 진동하고, 어디선가 출처 모를 거품소리가 들립니다. 그 모든 요소가 다분히 인공적이에요. 마치 어항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아 영 유쾌하지 않습니다. 금방이라도 저 수면 너머에서 거대한 손이 물살을 헤치고 자신을 움켜쥐러 올 것 같아서…. 유우는 피식자의 공포란 것을 느끼며, 바위 밑이라도 좋으니, 한시바삐 몸을 숨기고 싶다는 생각에 휩싸여요.

햇빛조차 들지 않은 깊은 바닷속, 해초라고는 한 줄기도 없는 모래밭의 연속. 여러모로 삭막하다는 감상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햇빛 하나 들지 않는 바닷속이라는 사실에, 제이드의 고향이라고 추측했지만…. 적어도 유우가 알고 있는 산호의 바다-그중에서도 심해-는 이렇게까지 삭막한 공간이 아니었어요. 물론 이번의 제이드 리치는 아직 알려주지 않은 사실이지만요.
걸음을 옮길수록 일어나는 먼지들로 인해, 시야가 극한으로 좁아집니다.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앞길을 모르게 되어요. 이런 점에서 어쩐지, 이 공간이 제이드를 떠올리게 됩니다. 유우는 지금까지 제이드를 몇 번이고 만나고, 그와 몇 번의 계약을 했지만서도…. 결국 그가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조차 해내지 못했어요. 단순히 살아온 시간만 비교해 보아도 자신이 훨씬 앞서 있을 텐데, 제이드는 늘 빙긋 웃으며 그 격차를 단숨에 따라잡습니다. 늘 자신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그 모습, 자신만만한 미소와 함께 은빛 단도로 자신을 갈라 안을 헤집어 보는 듯한 그 눈빛이 유우는 무척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구경하고 나면 다른 이들 처럼 바운더리 밖으로 내칠 것 같아서, ‘유우’라는 인간은 제이드의 흥미를 살 만큼 대단한 이가 아니라서…. 유우는 정처 없이 움직이던 발을 멈추고, 한숨을 깊게 내쉽니다. 한숨은 곧 물방울이 되어 눈앞에 떠올라요.

그런 유우에게로 시선이 하나 꽂힙니다. 뒤를 돌아보면, 유리창 너머로 노랗고 깊은 두 눈이 유우를 빤히 바라보고 있어요. 그럼 그렇지. 유우는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며 투덜댑니다. 이젠 악취미를 꿈에서도 즐기는 거야? 유우의 날 선 말에도 제이드는 해파리를 처음 본 아이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눈을 데굴 굴릴 뿐입니다. 마치 아주아주 소중한 것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제이드가 저런 눈빛을 하는 것을, 유우는 좀처럼 본 적 없습니다. 흔히 말하는 ‘연인’이 된 후에도 제이드는 유우를 이렇게 다정하게 보지 않았으니까요. 어쩌다 눈이라도 맞출라치면 고개를 휙 돌려 버리는 것이 일상. 이 때문에 유우는, 어쩌면 제이드는 자신을 진실로 사랑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하고 말았습니다. 그가 빌런이기에, 처음부터 계약이라는 관계로 맺어졌기 때문에, 아무리 자신의 눈 한쪽을 주었다한들 ‘다음’이 오면 자신을 까맣게 잊을 것이 분명하기에…. 여러 이유로. 유우는 제이드의 진실한 사랑을 바라는 것을 포기한 지 오래입니다. 지금도 그렇고요.
 
제이드는 그런 유우를 가만히 들여다보다, 유우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하나씩 어항에 ‘만들어’ 주어요. 언젠가 유우가 예쁘다고 이야기했던 가구며 옷들, 맛있다고 평했던 음식이며 반짝이는 장신구까지….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헌신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 행동을 보면, 마치 연인보다는 반려동물을 대하는 것 같아요. 평소 그림을 대하는 유우의 행동을 주의 깊게 본 영향이 분명합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이렇게 해 줄 수 있으니, 유우가 자신의 곁에 머물러 주기를. 이 솔직하지 못한 소년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의 형태이기에, 제이드는 유우가 진저리를 쳐도 어항의 뚜껑을 열어주지 않을 거예요. 눈앞에 계속 두고 보면, 유우를 잊을 일 따위 일어나지 않을테니까요. 제이드는 그녀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고 싶습니다. 근본은 순수한 애정이에요. 그러니 유우를 기억하고 싶고, 유우가 원하는 것은 전부 해주고 싶습니다. 그 표현 방법이 상당히 직설적이고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을 뿐.
 
유우는 그런 제이드의 속마음을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자신의 위로 하나 둘 쌓이는 것들을 공허하게 바라봅니다. 값비싸 보이는 옷들이며 장신구들이 하나씩 몸 위에 얹힐 때마다, 흰 모래 속으로 파묻힐 것 같이 무거워요. 어항 속에 갇혀 어딜 나가지도 못하는데, 장신구며 옷은 무슨 소용인지. 어차피 이 작은 인공호수 속에서 맴도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데, 밥이며 디저트는 무슨 소용인지…. 자신에게 무엇 하나 묻지 않고 마음대로 애정을 퍼붓는 제이드가 원망스러워요. 모래 위에 털썩 앉아, 투명한 아크릴 유리 너머로 제이드의 두 눈을 쏘아볼 뿐입니다. 팽팽한 대치가 이어져요.

그런 유우를 바라보던 제이드는, 어항의 뚜껑을 열더니 그 안으로 들어옵니다. 깜짝 놀란 유우와 반대로 아주 태평한 얼굴을 하고서요. 유우가 원하는 것은 전부 들어줄 수 있습니다. 원한다면 유우와 함께 수중에 잠길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의 ‘제이드 리치’를 봐주기를 바라요. 그 오기와 고집은 17살 남자 고등학생의 것이라고 믿기에는 너무나 깊고 진득해서, 유우는 어쩌면 제이드도 자신과 같이 오랜 시간을 살아온 것만 같다고 생각합니다…. 인어란 것은, 나서부터 영하에 가까운 물살을 헤치고 살아남은 것은 이런 사랑을 하는 것일까. 유우는 제이드의 입가에서 피어오르는 물거품이 점점 많아져서, 급기야 제이드를 감싸버려서…. 마치 제이드가 그대로 어항 속에서 녹아내리는 것 같다는 감상을 받습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유우는 땀에 흠뻑 젖은 채로 눈을 떠요.
 
유우는 꿈속에서 제이드가 자신을 대했던 행동을 하나씩 곱씹습니다. 여전히 제이드가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제이드의 꿈을 방문했기 때문일까요. 전처럼 제이드가 두렵거나 무섭지 않아요. 여전히 그 행동의 의도가 이해 가지 않지만, 적어도 자신에게 적대적인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역시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었으면 합니다. 계약이니 뭐니 하는 비유적인 관계 말고요. 유우는 제이드의 언변을 들어주기에 너무나 지쳐 있습니다. 이야기의 결말을 알기에 유우는 지금까지 몇 번이고 힘든 순간을 견뎌 올 수 있었지만, 동시에 자신이 들인 노력이 한순간에 잿더미가 되는 광경을 몇 번이고 지켜보았기에 마냥 어린아이처럼 기뻐할 수 없습니다. 그런 유우의 뒷이야기를 제이드는 전혀 모릅니다. 알게 되더라도 곧 잊을 것입니다. 그러니 유우는 제이드의 진심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만일 제이드의 고집이 저주를 이겨서 유우를 기억해 줄 수 있다면, 그렇다면 유우는 기꺼이 부록을 건네줄 의향이 있습니다.

어쩐지 몸이 무겁더라니. 유우는 그 다음 날, 열감기로 학교를 하루 쉬었습니다. 최근 과로한 탓이라고 해요. 그림은 아침 수업을 들으러 가고, 유우는 간만에 낮잠을 푹 잤습니다. 열로 입안이 바짝 마르던 중, 누군가 방에 들어와 유우의 곁에 머물렀던 것도 같습니다. 이마에 차가운 물수건이 놓이고, 입술을 적시는 수분으로 목을 축이며 유우는 다시 한번 깊은 잠에 빠져 들어요.
 
꿈은 깨면 기억하지 못하는 법, 유우가 제이드의 꿈을 방문했다고 해서 둘의 관계가 극적으로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유우는 제이드가 자신을 적대하지 않으며, 유우가 원한다면 그녀의 장단에 맞추어 줄 의향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제이드는 유우가 호화스러운 식사나 빛나는 진주보다도 자신의 진심을 원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진심을 노래한대도 유우가 그것을 믿어줄지도 불확실하지만요. 불신과 욕망과 기대와 실망이 뒤섞여, 둘을 더욱 깊은 심해로 끌어들입니다.
 

추가질문

Q. 이 사건 이후로 둘 중 하나가 사과를 한다던가 관계 개선을 위한 행동을 하려고 하나요?
A. 사과하지 않습니다. 제이드는 자신의 사과를 유우가 진심으로 받아들여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거든요.
유우의 카드가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걸 보면 유우의 정신 상태가 그닥 좋지 않거나, 반복된 루프로 여러 회차의 기억이 섞인 모양입니다. 때문에 이번 회차의 제이드와 싸웠던 일을 저번 회차의 것처럼 기억해요. 그런 유우의 비틀림을 감으로나마 인지하고 있기에, 제이드는 유우가 원한다면 그것을 '없던 일'로 해줄 의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상황이 진행되고….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둘은 이전의 관계로 돌아가요.

Q. 이 세계관에선 둘이 연인이 돼버렸는데(…) 고백은 누가 하게 된 걸까요?
A. 고백은 제이드가 먼저 한 모양이에요. 로맨틱과는 여러모로 거리가 멀지만….둘도 없는 관계를 원했고, 유우는 그것을 승낙했습니다. 그러니 연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먼저 관계를 맺고, 그 후로 서로에 대한 마음을 자각해 진정한 연인이 되어가는 시작점에 놓여있어요.
제이드는 매번 말을 매끈하게 돌려 말하지만, 자신과 교제해달라는 말 만큼은 단검처럼 날카롭게 유우의 귓가에 박혀들어서…. 좀처럼 거절할 수 없었어요. 그 목소리 하나에 반영구적인 계약을 맺다니, 유우는 자신 또한 어느 동화에 나오는 가엾은 자와 같다고 되뇌였습니다.

⚠️유혈 , 신체 훼손 소재 주의

- 오늘 퇴근하고 할 말이 있어요.

  유우는 약속 장소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복잡해지는 머릿속을 어떻게든 정리했다. 어제 홧김에 내지른 말이 그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당시에는 쉽사리 사과라던가 변명이 나오지 못했다. 그의 의도가 무엇이 되었던 유우에게 끊임없이 붙어오는 그의 행동이, 자신을 바라보는 그 눈과 시선의 끝이 싫었던 것도 사실이었고, 감정적으로 격앙되어 있어 제대로 된 이야기를 이어주지 못할 것이 뻔하기도 해서. 사실 이 약속 또한 도망간 후에 아무렇지 않게 그를 대하는 것도 어쩌면 좋은 선택지 중의 하나일 수도 있었지만, 그녀 자체가 그렇게 회피하고 도망가는 성격도 아니었을뿐더러 사과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창문으로 들어오는 옅은 달빛이 그녀의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향하는 길목마다 지금까지 그녀가 겪어왔던 일들이 짙게 떨어져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을 했다. 그녀가 수십, 아니 수백 번의 시간을 건너오는 동안 그 어떤 것도 유우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이번에는 그것이 제이드일 뿐이었다. 어차피 이런 일도 시간이 지나면 잊힐 텐데, 괜한 짓 아닌가. 약속 장소에 도착해서 자신을 비추는 달을 바라 보던 유우를 향한 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기다리게 했나요?”

  제이드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어, 유우가 달에서 순순히 시선을 내렸다. 왜 저렇게 어두운 곳에서 말을 거는 건지, 이쪽으로 다가오라는 손짓에 유우는 어쩔 수 없이 제이드에게로 향했다. 제이드의 앞에 서자 제이드가 평소와 같은 미소를 걸치고 유우의 허리를 단단히 틀어 맨 채로 도망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 이거 놓고 얘기해도 되잖아요?”
“또 도망갈지도 모르니까요.”

  그럼 슬프지 않겠어요? 우는 모습을 흉내 내던 제이드가 유우 쪽으로 허리를 숙였다. 뒤로 넘어가는 그녀를 단단하게 받친 채 가까이에서 시선을 마주했다. 보이는 눈동자가 선명했고, 유우가 그의 어깨를 잡아 밀어내려던 찰나, 제이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이 나를 믿지 못하는 게 이 눈 때문인 건가요?”

  그의 손가락이 왼눈을 가리키고 있었고, 유우가 입을 달싹이지도 못 한 채 순간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를 밀쳐내고 거리를 벌렸다. 순순히 허리를 놓아준 그에게서 시선을 피한 채 그녀가 다시 생각해왔던 사과를 읊었다.

“그건, ……”

  제이드는 그 답을 채 듣지도 않은 채 눈을 가리키던 손가락을 그대로 올리고 고개를 푹 숙였다. 신음 하나 들리지 않았음에도 유우는 그가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의 발치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으니까. 아무리 어두웠어도 저 정도는 분간이 되었으니까. 당황이 섞인 채 유우가 그에게로 다시 다가가자 그가 유우의 손을 덥썩 잡았다.

“…먼저 다가와 주셨네요?”
“지금 뭐 하는…!”

  유우의 손을 붙든 채, 뒤를 돌아보지 못하게 한 제이드가 그대로 그녀의 손바닥을 벌려 그 위로 눈동자를 내렸다. 감은 눈에서 피가 흘러 내리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웃음을 머금은 채 제이드가 입을 벌렸다. 그 목소리가, 손에 들려 있는 눈동자가 유우를 그 자리에 묶어 달아 놓은 것 같았다.

춘자(@SWERVINSEA)님 글 커미션

해명할 수 없는 망각의 연쇄와 기억의 소거는 미지의 영역을 개간한다. 일평생 타인의 진창을 갈라내 헤집던 제이드가 감히 침범할 수 없는 불가사의. 생경한 몰이해로 점철된 불가침의 존재. 수천의 조각을 더듬어 맞춰도 결코 완성할 수 없는 미완의 영속永續은 그의 오랜 집념이 되었다. 시인할 수 없는 패배. 영민한 뇌리로도 박제할 수 없는 유실의 의인擬⼈. 그럼에도 바라지 않은 맹목은 때때로 압박의 일환이 되지 않던가? 가장 유약한 심부를 헤집고 선연한 상흔으로 남은 활자. 불쾌와 경멸을 시사하는 시선. 해묵은 권태와 염세에 지친 이의 방향을 잃은 분노. 그러나, 적대로 얼룩진 관계의 골은 모순적이게도 이 미제의 해답을 도출한다. 노골적인 감정의 틈을 벌리고 박아넣는 금빛 안구의 폭력적인 구속. 제대로 들어맞지 않아 생겨난 틈을 메우는 죄책감과 연민의 종용. 마침내, 고대했던 미완을 수복해낸 뒤틀린 전경全景. 이방인의 단편적인 초상은 그렇게 제이드 리치의 완전한 소유가 된다. 무한한 망각의 역사 속에서도, 유우의 죄악과 책임 만큼은 오롯이 그의 것일 거라는 약속.

몽치(@mongchi_cmcm)님 타로 커미션

두 사람은 여느 귀족 자제들이 그러하듯, 사랑 하나 없는 결혼을 하게 됩니다. 둘이 결혼해야만 하는 이유는 다양했어요. 드높은 명예와 하나로 합쳐질 두 가문의 위대한 유산들, 정치적 입지, 분가들의 안전 등등... 마치 처음부터 리치 가의 자제와 검은 머리의 영애가 결혼하도록 누가 판이라도 짜 둔 것 같았습니다. 누군가는 이 결혼이 하늘의 뜻이라고도 했고, 누군가는 두 자제분의 성격이 만만찮으니 금세 갈라설 것이라고도 했어요. 그만큼 제이드와 유우의 결혼은 장안의 화젯거리였습니다. 정작 본인들에겐 색다르게 와닿았던 모양이지만요.

제이드는 이 결혼이 제법 기대됩니다. 결혼이라는 행위 자체보다는, 유우와 어떠한 형태로 엮이게 된다는 점에서 기대를 품고 있어요. 결혼을 하지 않은 자제들이 으레 그렇듯, 두 사람은 몇 번 만나 본 적이 없습니다. 어느 귀족가, 혹은 왕가가 주최하는 무도회 아니면 만날 일이 없으니까요. 유우 쪽에서 먼저 제이드를 다과회 따위에 초대할 일도 만무하고요. 그럼 제이드는 그 몇 번 안 본 영애에게 왜 그렇게 관심을 두느냐 하면, 몇 년 전 있었던 유우의 데뷔탕트 때문입니다.
당시 유우보다 한 살 많았던 제이드는 흰 드레스에 옥빛 비단을 동여맨 유우의 모습을 눈에 담고 있었어요. 유우는 고작 열네 살 이었지만, 마치 몇 년은 사교계에서 지낸 것 처럼 모든 것이 능숙했습니다. 누군가 걱정을 빙자한 시비를 걸어도, 뜨내기가 춤 신청을 해와도 부드럽게 거절할 줄 알았어요. 제이드는 그런 유우에게 다가가, 자신의 쌍둥이와 '일부러' 헷갈리도록 굴었습니다. 이것은 장난기 많았던 쌍둥이들의, 고귀한 영애를 놀리는 것에 불과했어요. 겸사겸사 그 태연자약한 얼굴이 언제 무너질까, 기대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우는 방자하게 굴던 제이드와 침착하게 굴던 플로이드를 단번에 구분했고, 그 때부터 제이드는 유우를 관심 속에 두게 되었습니다. 한 번 꽂히면 다른 건 보지 않는 그의 성격상, 그 누구도 제이드를 말릴 수 없었어요.
그래서 제이드는 결혼에 대한 의견을 내라고 했을 때, 유우가 아니면 그 누구도 성에 차지 않는다고 대답했어요. 리치 가 영식이 남다른 짝사랑을 한다는 소문은 금새 일파만파 퍼졌고, 여러 조건이 잘 들어맞아 둘은 머지 않아 결혼식을 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이 결혼에는 유우의 의견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점과, 제이드조차 그녀를 사랑하는지 분간하지 못 하는 상태였다는 거예요.

유우는 결혼에 큰 의의를 두지 않습니다. 애초에 그녀가 몇 번의 데뷔탕트와 몇 번의 결혼을 거쳤는지는 아무도 모를 겁니다. 심지어 당사자인 유우조차요. 유우는 꼭 만 육천 오백 여섯 번째로 받아보는 청혼장의 이름을 보곤 고개를 갸웃, 했어요. 제이드 리치,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입니다. 유우의 기억대로라면 리치 가문은 정계나 사교계에 모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가문으로 유명했거든요. 그런 리치 가에서 자신에게 청혼장을 보내다니, 이건 제법 놀랄 일입니다. 하지만 유우가 더더욱 놀랐던 점은, 제이드 리치가 '자신만을' 콕 집어 결혼 상대로 지정했다는 점이에요. 보통은 두 가문에서 결혼 적령기가 찬 남녀를 결혼시키는 게 일반적인데, 제이드 리치는 그런 것 없이 상대를 콕 골라내었습니다. 만약 유우가 제이드보다 아주 나이가 많았거나, 이제 갓 태어난 아이였어도 전혀 상관 없다는 듯이요. 그런 오만하고 저돌적인 태도에 유우는 기분이 팍 상해버렸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이미 결혼식의 종은 울렸고, 두 사람은 신의 축복 아래 부부가 되었습니다. 유우는 결혼 생활에 별 기대가 없습니다.

결혼식 당일, 두 사람은 정원에서 결혼을 올립니다. 이팝나무가 유달리 흐드러지게 피어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는 장소에요. 끝없이 흩날리는 꽃잎은 신부의 웨딩드레스 색과도 잘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합니다. 해가 내리쬐고, 구름 한 점 없이 하늘은 드높습니다. 그야말로 환상적인 결혼식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웬일인지 유우의 표정이 좋지 않아요. 물론, 유우의 표정은 좋았던 적이 없었지만 말예요. 만일 오늘이 결혼식만 아니었더라면, 유우도 표정을 풀고 조금은 여유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앞에 말쑥하게 정장을 빼 입고 서 있는 제이드를 보자니, 좀처럼 경계를 풀 수 없어요.

제이드는 싱글벙글 웃으며 하객들과 인사하고, 끊임없이 유우를 돌봅니다. 치맛자락이 아주 거슬리지는 않는지, 꽃 향기는 어떠한지... 물론 그런 질문을 할 수도 없도록, 제이드가 유우의 취향에 맞추어 모든 것을 계획했지만 말예요. 그걸 알고 있기에 유우의 표정은 좋을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제이드는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어설픈 추측이나 예측 따위가 아니라, 유우의 입으로 듣고 싶은 거예요. 제이드는 유우 같은 이들을 많이 만나 왔습니다. 제아무리 경계를 하고있다 한들, 한 번 말문이 트이면 그 때부터 주도권을 빼앗아 올 수 있거든요. 제이드는 유우가 조금 더 고집이 센 것일 뿐, 자신이 아는 이들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유우의 말문이 트였을 때, 그로 인한 결과가 어떻게 퍼져나가는 지를 가장 곁에서 두고 보고 싶었기 때문에 유우에게 청혼한 거예요.

유우는 그런 제이드가 영 못마땅합니다. 제이드의 일방적인 관심이 불편해요. 사교계에서 자신이 가진 입지를 이용해 멋대로 판을 벌리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유우는 그 장난에 놀아나고 있고요. 유우도 한때는 진실되고 순수한 사랑만 갖고 결혼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좋지 않았거나, 그저 그랬어요. 한 번도 아름다운 결말을 맞은 적이 없습니다. 때문에 자신을 향해 자칭 '순수한 사랑'을 내비치는 제이드가 마치 자비로운 척 손을 내미는 악마같아 보입니다.  또 다시 자신에게 어떤 참사를 보여 주려고 이리 구는 건지... 물론 그에 적당히 어울려 주고 있는 자신도 참 악취미라는 생각이 들어요. 현재의 유우는 여러모로 지치고 힘든 시기라, 여러 면에서 충동적인 결정을 내릴 때가 많습니다. 제이드의 청혼을 수락한 것도 그 충동의 일환이고요.

두 사람은 결혼 후, 평소와 다름 없는 일상을 보냅니다. 유우는 신부 수업 때 교육받은 대로 집안의 행정과 예산을 정리하고, 제이드는 가주로서 바깥일을 처리해요. 너무나도 명확하게 그어진 역할 안에서, 유우는 또 다시 익숙한 생활을 반복합니다. 유우에게는 몇백 번씩 해 온 일들이니, 이제 와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어요. 하지만 그런 일상이 제이드에게는 생소했는지... 자꾸만 유우가 그어 둔 선을 멋대로 넘어와서는, 유우의 모든 면을 관찰하고 파헤칩니다. 마치 피부와 뼈 아래 어드메에 심장이 존재한다는 걸 알기라도 한다면, 그대로 유우를 집어삼키려 들 것 같은 눈빛으로요. 피식자 유우에게는 그 눈빛이 심히 불쾌할 수 밖에 없습니다. 처음부터 제이드의 호기심을 가장한 무례가 마음에 안 들었어요. 때문에 번번히 제이드의 저녁 식사 초대에 퇴짜를 놓고, 혼자의 공간을 꾸려 그 안으로 숨어듭니다. 그리고 제이드는 끝까지 그런 유우의 뒤를 따라가요.

그럼에도 두 사람은, 겉보기에는 조금 냉랭하지만 단란하고 사이 좋은 부부로 보입니다. 사용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신사적인 제이드와 우아한 유우의 칭찬을 아끼지 않아요. 마님이 가끔 주인님께 차갑게 대할 때가 있지만, 그마저도 마님의 매력이라며 미소를 짓습니다. 몇몇 사용인들은 유우가 '지나칠 정도로' 집안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게 그저 놀랍습니다. 앳된 얼굴을 하곤, 인생을 다 산 사람처럼 구는 사람은 드무니까요. 때문에 좀 더 제이드와 행복한 결혼 생활을 즐겼으면 하고 바라고 있어요. 제이드만큼 부인에게 잘 해 주고, 친절한 남편은 흔치 않다면서요. 유우가 이 말을 들으면 미간을 찌푸릴 일이지만, 제이드의 속내를 모르는 사용인들에게 있어서 제이드는 조금 엉뚱하지만 상냥한 남편이자 가주일 뿐입니다.

결혼 후, 제이드와 유우는 서로를 결혼 전과 변함없이 대합니다. 제이드는 유우의 비밀을 알아내고 싶어요. 유우는 평탄한 제이드의 테라리움에 갑자기 등장해, 모든 것을 헤집어 놓은 존재니까요. 그리고 유우는 이제 와서 자신에게 보이는 저 급격한 관심이 부담스러울 뿐입니다. 때문에 쫓고 쫓기는, 누가 포식자인지도 모르는 관계가 지속되어요. 둘의 관계가 급격하게 변화하는 건, 어느 날 발발한 전쟁 때문입니다. 제이드는 후방이긴 하지만 지원병으로 차출되었고, 그렇게 유우의 곁을 떠나게 되었어요. 떠나기 전, 제이드는 자신이 무사히 살아 돌아오면 유우에게 한 가지 선물을 달라고 조릅니다. 유우는 저 시커면 속내에서 무슨 요구가 나올 지 알 수 없었지만, 마지못해 제이드가 바라는 대로 내기를 걸어요. 제이드가 전쟁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유우의 습관이나 이름을 잊지 않는다면, 그 때는 유우가 제이드에게 한 가지 비밀을 알려 주는 것으로요. 
그렇게 제이드는 전장으로 떠나고, 유우는 거대한 저택에 홀로 남겨집니다. 이 사건 이후로 둘의 관계랄까 감정은 좀 더 급박해진다고 해요.

추가질문

Q. 이 이후의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까요?
A. 유우는 혼자 남겨진 기간 동안 제이드가 얼마나 오래 전부터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있었는지를 알았고, 덩달아 그 이유가 궁금해져요. 그 날 자신의 옷은 그렇게 특별하지도 않았고, 행동거지도 가르침 받은 대로 했을 뿐인데 그 많은 영애 사이에서 왜 자신이 눈에 띈 건지... 어느새 유우는 제이드처럼 행동하고, 제이드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었어요. 자신의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다른 누구도 아닌, 제이드의 입에서 듣고 싶습니다. 때문에 제이드의 일방적인 관심을 한...10% 정도 이해하게 되고,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기 시작해요. 이렇게까지 유우에게 적극적이었던 사람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없었기 때문에, 제이드는 자신의 삶이랄까 운명을 바꾸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제이드는 무사히 귀환합니다. 한 쪽 눈을 잃었지만 말이에요. 하지만 그것으로는 유우와의 내기를 방해할 수 없었어요. 제이드는 몇 년이 지났음에도 유우의 습관을 하나하나 꿰고 있었고, 유우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제이드의 승리를 선포합니다. 그리곤 하루에 한 소절씩,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기본적으로 자신의 비밀을 '전부' 말해주지는 않아요. 제이드를 '다음' 에 만났을 때 제이드가 자신을 기억한다면 조금씩 의지할 수 있겠지만, 유우는 지금 제이드를 '처음' 만났으니까요. 그리고 유우가 자신의 비밀을 전부 말하지 않아야 끊임없이 제이드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고, 표면적이더라도 안전한 결혼 생활이 이어질 수 있습니다. 때문에 유우가 제이드에게 비밀을 전부 이야기하진 않겠네요.)
이야기를 들을수록 제이드는 유우가 가진 신비로움이 한꺼풀씩 벗겨지는 기분이 듭니다. 지금까지 유우는 닿을 수 없는 높은 곳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 같은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유우는 그저 제이드와 같은 위치에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음을 깨달아요. 하지만 이는 제이드가 원하는 결과가 아닙니다. 그걸 알기에 유우도 최대한 사적인 이야기는 자제하며, 있는 사실만을 전달해요.

새장에 들어가지 않으려 하는 새와 보기 좋게 열려진 덫, 두 사람의 관계는 수평적이면서, 여러 의미로 서로밖에 바라보지 못 하는 관계로 변화합니다. 다른 곳에 눈을 돌렸다가는, 언제 목을 물어뜯길 지 모르니까요.

Q. 둘이 나름(...) 부부인데 스킨십을...하...나요...?
A. 전쟁 나가기 전엔 안하고 그 이후에는... 아무래도 이전에는 유우가 벽을 크게 치고 있다 보니, 제이드도 스킨십보다는 유우의 마음을 얻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귀환 이후에는 좋든 싫든 유우가 제이드에게 정이 들었다는 것을 알기에 조금 멋대로 굴며 스킨십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일단은 부부니까요. 라며 바깥에서 스킨십을 하려 하기도 하고... 유우는 그럴 때 마다 괜히 제이드의 입술을 콰아앜. 깨물거나 하면서 심통을 부린다고 해요. 이런 사람이라는 건 알았지만 아무래도 괘씸하니까...

몽치(@mongchi_cmcm)님 타로 커미션

인간이 아닌 자와 '그것'을 사냥하는 자

숲 속의 뱀파이어 유우×사냥꾼 제이드

유우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뱀파이어에요. 언제부터 자신이 피를 갈망하게 되었는지, 누가 자신을 이런 괴물로 만든 것인지 전혀 아는 것이 없습니다. 세상에 대한 무지와 주체할 수 없는 흡혈욕이 어린 뱀파이어의 안에서 날뛰며, 유우는 단기간에 많은 사람들을 해치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는 사냥꾼들에게 딱 좋은 먹잇감이 되었습니다. 달빛의 머리카락을 가진 뱀파이어가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사냥하고 다닌다는 소문은, 많은 사냥꾼들의 마음을 동하게 만들었습니다. 뱀파이어는 성장할수록 사람들 속에 잘 숨어들기 때문에, 아직 공격성이 왕성한 어릴 적에 잡아두어야 하거든요. 
구름이 달을 가리지 않은 날 밤이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 사람들을 해친다는 어린 뱀파이어, 오묘한 색이라는 그 머리카락을 잘라다 판다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뿐만아니라, 뱀파이어를 잡았다는 명성까지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유우는 많은 사냥꾼들에게 먹잇감이 되었어요. 유우는 자신에게 얽힌 소문도 모르는 채로, 자신에게 덤벼드는 사냥꾼들을 하나하나 처리해 나갔습니다. 

제이드 또한 사냥꾼이 된 지 얼마 안 된 초보입니다. 애초에 총이나 피를 접할 신분이 아니었지만, 어느 날 마주한 뱀파이어를 보고 홀리는 바람에 그대로 사냥꾼이 되었다고 해요. 때문에 사냥꾼들은 그를 '별종 도련님'이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원체 호기심이 왕성하다 보니 다른 사냥꾼들을 잘 따라다니기도 했고, 가끔 혼자 뱀파이어의 뒤를 쫓겠다며 무작정 산을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뱀파이어 대신 귀한 버섯들을 한 움큼 이고 내려오는 경우도 왕왕 있었고요. 하여간 곱상하게 생겨서는 총포가 어울리지 않는 도련님. 이 제이드에 대한 일반적인 평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이드가 속한 무리에게 '흰 뱀파이어'를 잡아 달라는 의뢰가 내려옵니다. 아직 초보인 제이드도 의뢰 내용은 상세하게 들을 수 있었고, 제이드는 예전에 자신이 마주한 뱀파이어가 이번 사냥감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결코 다른 이에게 넘겨 줄 수 없습니다. 제이드는 그 뱀파이어에게 묻고 싶은 것이 아주 많거든요. 그 날부터 제이드는 착실하게 산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더 이상 버섯이나 들풀 따위에 시선을 뺏기지도 않고, 묵묵히 뱀파이어의 뒤를 쫓아요.

그러던 어느 날, 제이드는 유우를 마주합니다. 유우는 그믐달을 등진 채로, 입가에서 피를 뚝뚝 흘리고 있었어요. 누가 봐도 방금 사냥에 성공한 모습에, 제이드는 그 자리에서 자신이 다음 사냥감이 되지 않도록 몸을 숙여야 했어요. 유우는 그런 제이드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빠른 속도로 사라졌습니다. 아주 짧은 만남이었지만 제이드는 그 순간에 두 가지 사실을 자각했어요. 하나는 유우가 이전에 자신이 만났던 뱀파이어가 아니라는 점이었고, 하나는 그럼에도 제이드는 앞으로도 유우를 쫓게 될 거라는 점이었습니다. 제이드는 기본적으로 탐구욕이 강한 사람이고, 유우는 우연히 그 탐구의 대상으로 얻어걸린 거예요. 이 사실을 유우가 알면 조금 억울해할 지도 모르겠지만... 제이드는 유우가 먼저 자신의 수조에 뛰어들어와 물을 마구 헤집어 놓았다고 우길 것입니다. 

유우는 제이드가 못마땅합니다. 보통 다른 인간들이라면 자신을 보자마자 겁을 집어먹고 총구부터 겨누거나, 한 건 잡았다는 듯한 역겨운 표정을 지을 텐데... 제이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고, 그저 색 다른 두 눈으로 유우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순수하게 호기심 어린 눈은, 유우로선 태어나서 처음 보는 반응이었습니다. 때문에 유우는 작전상 후퇴를 감행했고, 앞으로 제이드와는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점점 자신을 사냥해오는 인간이 많아지는 지금은, 유우가 '모르는'것을 늘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생존본능과도 같은 거겠죠.
(만약 모든 사냥꾼이 유우를 노리거나 하는 시점이 아니었다면, 유우 또한 제이드에게 관심을 갖고 좀 더 평화적인 분위기를 내비칠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러나 타이밍이 안 좋았던 탓에 두 사람은 가까워지기까지 시간이 제법 걸린다고 합니다.)

유우의 바람과는 다르게, 제이드는 날이 갈수록 유우를 찾는 데 익숙해져요. 그 때마다 유우는 역정을 내고, 제이드는 유우의 이러한 흔적을 좇았다고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유우는 한낱 인간 주제에 모든 것을 다 안다는 제이드의 태도가 맘에 안 들었지만, 실제로 제이드가 알려 준 흔적을 조금만 신경쓴다면 사냥꾼들이 유우를 찾기 어려워질 거예요. 유우는 아직 어린 뱀파이어였고, 사냥 후 뒤저리나 기척 등을 숨기는 데 능숙하지 않았으니까요. 유우는 제이드가 왜 자신에게 이런 것을 알려주는 지 물어봅니다. 설마 제이드도 자신과 같은 뱀파이어인 건가, 하고 생각하기까지 해요. 

그렇게 유우가 자신의 기척이나 흔적을 지우는 덴 점점 익숙해지지만 제이드는 오히려 더 자주, 더 능숙하게 유우를 찾아냅니다. 일종의 목숨이 걸린 숨바꼭질이 계속되어요. 그 과정에서 유우는 은탄에 맞아 한 쪽 팔을 못 쓰게 될 뻔한 적도 있고(다행히 흡혈로 복구했습니다.) 제이드는 한 쪽 눈을 잃을 뻔 했어요.(유우의 공격을 가까스로 피한 덕에 긴 흉터가 남아 버렸어요.)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쫓는 기이한 관계가 계속됩니다.

그간 두 사람이 생각하는, 서로에 대한 인상도 많이 바뀝니다. 제이드는 유우가 서툴고 어린 뱀파이어지만, 잘 자라기만 한다면 이제껏 보지 못 한 강한 뱀파이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렇게 자란 유우는 얼마나 아름답고 흥미로울지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정말 다른 사냥꾼들의 말처럼 제이드는 뱀파이어에게 홀린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뱀파이어는 일반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없고 알려진 게 많이 없는 종족이니까요. 그만큼 제이드에게 있어서는 미지의 세계이고, 마치 처음 버섯과 산을 알았을 때의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언젠가 유우가 성장한 모습을 자신의 패키지, 혹은 박제에 넣고싶다... 가능하다면 계속 자신의 곁에서 머무르게 하며 뱀파이어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고 싶다는 게 제이드의 원초적인 욕구입니다. 물론 그 때까지 제이드가 살아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요.
뱀파이어 유우는 그러니까... 버섯같은거죠(...)

유우는 자신에게 이런저런 팁을 알려주는 제이드가 한때 믿음직스러웠으나... 어느 날 구강구조가 궁금하다고 냅다 송곳니를 들여다보고 자신의 손가락을 망설임 없이 유우의 입안으로 집어넣는 제이드의 돌발 행동에 완전히 질려 버렸습니다. (괘씸해서 그대로 엄지를 깨물었는데, 제법 아팠는지 제이드는 이후 같은 행동을 하진 않았습니다.) 미쳐도 이처럼 미친 인간은 없을 거야<<유우가 생각하는 제이드의 현재 인상입니다. 뱀파이어가 궁금하다길래 흡혈하는 장면도 보여 주고, 이도 보여 줬습니다. 그러나 제이드는 더 큰 것을 요구해 와요. 이쯤 되니 제이드의 목적이 감히 짐작가지도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유우가, 제이드를 질려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어요. 때문에 처음 만났을 때 처럼, 또 다시 제이드를 피해다니는 상황이 반복됩니다. 어떻게 보면 제이드의 자업자득이네요.

그러던 중 의뢰 종료 기간이 점점 다가옵니다. 사실 제이드는 의뢰에 대해 별 의무감이 없었기 때문에 의뢰가 종료되건 말건 별 생각이 없었어요. 하지만 다른 사냥꾼들은 의뢰비를 받지 않으면 가족을 부양할 수 없는 상황, 제이드의 뒤를 몰래 좇아 유우를 발견합니다. 안 그래도 눈엣가시였던 제이드는 의뢰 수락 이후 '저 세상 모르는 도련님이 우리 밥벌이를 망친다'는 의혹을 받고 있었어요.(크게 틀린 말도 아니었고요.) 그렇게 사냥꾼들은 단체로 유우에게 덤벼들었고,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란 제이드는 그들의 총알을 피하려다가 그만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맙니다.

유우 또한 놀랐긴 마찬가지였어요. 약 이주 간 보지도 못 했던 사냥꾼들이 떼거지로 몰려오다니, 이래서는 제이드가 지금까지 자신에게 알려 주었던 정보가 모두 거짓이었음을 자백하는 꼴이나 다름없습니다. 어쩌면 제이드가 자신을 안심시킨 후에, 습격하려던 계획이었을지도 모르고요. 유우는 아무리 얄밉고 수상해도 나름 제이드를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인간들과 달리, 뱀파이어인 유우를 적대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유우의 앞에는 기름 먹은 횃불과 은탄이 무수히 날아들고 있습니다. 유우는 배신감과 허탈함에 절망하고, 그대로 전투에 맞서요. 
동쪽 하늘에 걸렸던 달이 하늘 중앙으로 옮겨갈 때 까지, 유우는 외로운 싸움을 계속해야만 했습니다. 제이드가 절벽 밑으로 떨어진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고 해요.

그렇게 유우는 외로운 불멸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차례 피를 흘려도 금새 살아나는 몸뚱이와, 몇 백년 전 일도 어제처럼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들이 모두 유우에게는 저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오랜 방황 끝에 유우는 죽음을 바라게 됩니다. 그리곤 이번에는 자신이 제이드를 찾아 나서기 시작해요. 이 세상에서 유우를 가장 잘 아는 건 제이드뿐이니, 유우를 가장 확실하게 죽일 수 있는 것도 제이드니까요. 뱀파이어가 좋아서 사냥꾼을 시작했다던 제이드에게, 다시 만나면 그 꿈을 확실하게 이루어주리라 결심합니다. 

제이드는 당연히 그대로 숨을 거두었고 이후 여러 이유로 유우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유우가 찾아오는 것에 가깝지만요.) 그리곤 영생을 살았다던 유우에게 흥미를 느낄 거예요. 유우가 바라는 대로 그녀의 목숨을 끊어줄 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한 가지 알 수 있는 건, 그 때도 유우와 제이드는 한 마디씩 주고받는 친구이자 웬수 사이가 될 것입니다.

추가질문

Q. 유우가 제이드를 흡혈한 적도 있나요?
A. 네! 유우가 흡혈욕을 못 참고 냅다 물어버린 적도 있고 제이드가 유우랑 싸우다 상처입혔을 때 사과의 의미로 피를 내어 준 적도 있다고 해요. 유우는 흡혈량을 조절하지 못 해서 그대로 제이드를 골로 보내버릴 뻔한 적도 있었고요. 그 이후로는 제이드가 죽을까 봐 눈치를 봐 가며 피를 핥는 형식으로 흡혈하곤 했습니다. 제이드는 이것 또한 새로운 경험이라며 눈을 빛냈고, 유우는 그런 제이드더러 이상한 놈이라며 더욱 제이드를 기피하게 되었어요. 

Q. 이후 또 다른 제이드를 만났을 때 둘의 반응
A. 재회했을 때의 제이드는 유우를 기억하지 못 하고, 유우가 이야기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유우를 흥미로운 대상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제일 먼저 만난 제이드처럼 유우를 패키지로 삼고 싶어한다거나 깊게 알아가고 싶어 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에요. 그리고 그 어떤 제이드도 유우와의 과거를 기억해내지 못합니다. 때문에 유우는 믿어달라고 말하면서도 자신을 기억하지 못 하는 제이드에게 실망하고, 너는 내가 알던 제이드가 아니라며 퇴짜를 놓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래 봤자 몇백 년 후에 다시 환생한 제이드를 만나게 되지만요. 그런 과정을 겪으며 유우는 점점 제이드에게 기대하는 것이 없어지고, 무심해지며, 제이드에게 냉랭해져요.

Q. 앞으로 둘의 관계가 어떻게 흘러가게 될까요?
A. 이후 유우는 자신을 죽여줄 제이드를 찾아 나섭니다. 몇십 년, 혹은 몇백 년 주기로 환생하는 제이드는 번번히 유우를 마주치고, 새롭게 유우에게 빠져들지만 유우를 죽이려는 시도는 하지 않아요. 제이드에게 있어 유우는 아름답고 매력적이며 신비한 뱀파이어입니다. 이런 뱀파이어를 죽인다면 다시는 유우의 눈길이 자신에게 향하지 않을 테니까요... 이왕이면 살아있는 채로 자신의 곁에 두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유우는 그걸 원하는 게 아니에요. 온전한 끝을 원합니다. 그리고 그걸 할 수 있는 건 제이드뿐이에요. 이 엇갈린 욕구는 끊임없이 둘을 멀어졌다 가깝게 만듭니다.
그 과정에서 제이드는 자신에 대해 속속들이 아는 유우에게 흥미를 느끼고, 유우는 끊임없이 반복된 기대와 좌절에 무뎌져 제이드에게 분노를 표출하거나, 냉랭하게 대하거나 하며... 그렇게 끊임없이 관계를 반복하게 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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